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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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6.12.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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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희 수필가.

여든 넘은 노모를 모시고 병원에 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이번엔 치과치료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오게 되니 시간을 내는 이도 쉽지 않다. 처음에 병원에 다닐 때는 바빠도 내 부모인데 당연히 와야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치기도 하고 때론 힘들 때도 있었다.

차를 타고 오는데 “너 바쁜데 나 때문에 니들 고생시켜서 어쩌니?" 라며 친정엄마는 내 눈치를 보시는 것 같았다. 바쁘다는 말은 안했지만 바쁜 날은 급한 마음에 액셀을 더 밟으며 서둘게 되고 평소와 나의 행동이 다른 모양이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친정엄마는 나의 마음을 다 읽고 있는 것 같았다.

“000 씨, 보호자 계세요?" “안 계세요?" 병원에 도착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뒤늦게 '네'라는 대답과 더불어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오늘은 유난히 환자가 많아 병원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어 정신이 없다. 간호사는 진료에 대한 기본 사항을 확인하고 기다리란다.

많은 환자들 틈에 앉아 있는 친정엄마의 좁아진 어깨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학창시절 '보호자'란에 부모님의 이름을 쓸 때가 많았다. 그 땐 그것이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결혼 후 나의 기본 서류 '보호자'란에 남편의 이름이 쓰여 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부터 나의 보호자는 남편이란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애들 낳고 살다보니 내 부모보다는 내 자식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식들이 점점 자라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정작 내 부모가 늙은 노모가 되어 있음을 망각해 버리고 말이다.

그 정정하시던 친정엄마가 걷는 게 어둔해져 자주 넘어지시고 아픈 것을 보면서 잘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할 때가 많았다. 부모에게 잘하고 싶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마음과는 달리 실천은 쉽지 않다.

내가 늙고 병든 노모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낯설었다. 보호자는 보호해 주는 사람인데 내가 과연 친정엄마를 잘 보호하고 있는가? 나는 친정엄마의 보호자로서 잘 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 반성해 보게 했다. 부모로부터 늘 받기만 했던 것이 당연하게 느꼈던 내가 부모에게는 희망이자 기대고 싶은 상대였을지 모른다.

부족한 자식의 모습으로 살아 온 나도 언젠가 나의 자식을 보호자로 생각할 나이가 되겠지. 갑자기 늙고 병든 나의 미래 모습을 떠올려 보니 걱정이 앞선다. 3시간 동안의 기다림 속에 많은 것을 느끼게 했고 좀 더 성숙한 내 모습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지쳐 곤히 잠든 친정엄마의 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돌고 도는 게 인생이고 한 치 앞도 모를게 인생이지만 앞일을 먼저 걱정하고 고민할 시간에 지금 내 옆에 계신 부모님의 어엿한 보호자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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