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의 만찬
그들과의 만찬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7.02.2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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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숙 수필가.

금방이라도 바퀴벌레가 기어 나올 것 같다. 끈적거리는 방바닥에 발을 내딛기가 불편하다. 밥상으로 이용되는 평상에 앉으라는데 한눈에 봐도 온통 땟자국이다. 그들은 우리를 대접한다고 걸레로 닦지만 닦으나마나 똑같다. 그들의 마음이 불편할까봐 모른 체 올라앉았지만 찝찝했다. 내가 이들과 식사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깨끗해 보이는 곳은 한 곳도 없었기에 식사를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쓸데없이 이곳저곳에 발을 들여놓고 살다보니 딸에게도 발길을 돌릴 시간이 없었다. 어지간히 바쁜 일이 마무리 된 것 같아 김치며 반찬을 싣고 딸에게 갔다. 발걸음이 격조했던 티가 팍팍 났다. 양념은 물론 김치도 다 떨어졌다. 엄마란 그런 것인가 보다. 딸이 출근하고 없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어던지고 청소하고 퇴근해서 올 자식을 기다리며 반찬을만들고 있다.

딸과 며칠 지내고 남편이 있는 대천으로 차를 몰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 가봐서 미안한 마음을 안고 남편에게 간 것이다. 나를 본 남편은 다짜고짜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먼 이국인 한국까지 와서 어선을 타는 청년 다섯 명이 자기들이 사는 곳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그들이 우리나라 김치를 잘 먹는다며 김치를 담가 달래서 가져다주고, 겨울이 되자 그들이 추위에 떠는 것이 안타깝다며 옷이며 이불을 모아 가져다주었다. 자기들에게 관심을 준 것이 고마웠는지 저녁을 대접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삼겹살을 준비하고 마침 남편에게 주려고 가져간 고구마를 챙겨 그들이 사는 곳을 찾았다.

그들이 사는 곳은 컨테이너 박스 두 개를 이어 놓은 곳이다. 난방은 전기난로 하나가 전부다. 곳곳에 전기 합선으로 인하여 까맣게 그을린 곳이 보이고 창문도 깨져있다. 창문도 이가 맞지 않아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다. 어른들이 말하길 겨울엔 바늘구멍이라도 황소바람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선주는 이 상황을 알기나 할까? 내 자식이 이런 환경에서 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가져간 삼겹살과 고구마를 저며서 함께 구워주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내 자식이 먹는 것만큼이나 기뻤다. 정을 담은 듯 술을 한잔 가득 부어 내게 내민다. 약 먹느라 안 마셨던 술을 정이라 생각하고 마시며 어울리자 찝찝했던 기분은 어느덧 사라졌다. 오랫동안 못 보았던 자식들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디서든 엄마노릇을 하려는 것 같다.

한국에 온 지 오래된 친구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도 한국어 구사가 어설프다. 거의 못 알아듣는 친구들에게는 몸의 언어로 대화했다. 그나마 한 친구가 조금 알아들어 통역(?)을 했다. 한 마을에 살다 이곳으로 왔다는 친구들은 거기서도 배를 탔단다. 같은 마을에서 알고 지내다 온 사람이라 덜 외로울 것이다.

어선을 타고 나가서 작업을 하다가 선장이 시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자주 욕을 먹는다고 했다. 시간도 없고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으니 한국말이 늘지 않는다고 했다. 음식을 먹으며 조금씩 가르쳐주었더니 잘 따라 한다. 한국말 열심히 배워서 욕먹지 않고 즐겁게 일하라고 하고 일어섰다.

돌아오려고 문을 나서는데 냉장고를 열어 갑오징어며 얼린 낙지를 손에 들려준다. 우리나라 사람이나 베트남 사람이나 정이 많은 건 닮은 것 같다. 나도 시골에 살면서 친구들이 오면 뭐라도 줄게 없을까 여기저기 뒤져 조금이라도 주어야 맘이 편했는데 이 친구들도 그런가 보다. 넣어두고 먹으라고 해도 자기들은 나가면 또 잡아 온다면서 굳이 손에 쥐어주며 가져가라고 한다.

우리네 형제들도 어려웠던 시기에 독일로 중동으로 가서 가족을 위해 눈물나는 고생을 했다. 저들도 지금 고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타국에 와서 고생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따뜻한 정을 베풀면 좋을 텐데. 선주나 선장이나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가족처럼 품어주는 마음으로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여름엔 모기 때문에 힘들고 겨울엔 찬바람이 들어와서 춥다고 한다. 일하는 거야 힘들어도 어쩔 수 없지만 숙식만큼은 깨끗하고 편하게 해 줄 수는 없을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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