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겨울
엄마의 겨울
행복의 뜨락
  • 이재선
  • 승인 2017.03.20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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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여보세요? 엄마 첫째딸이야.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이제 해야지" 저녁 5시쯤 친정 엄마와 전화통화한 내용이다. 팔십 넘은 노인네가 무슨 직장이냐고 하지만 엄마는 경로당을 직장처럼 여기고 다니신다.

농한기의 시골 노인네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농번기 때는 허리도 쑤시고 다리도 아프지만 텃밭이라도 가꾸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아픔도 소일거리가 있기에 잠시 잊고 지내게 된다. 그렇지만 추수가 끝난 들판이 잠시 쉬는 동안 노인들은 또다시 찾아오는 아픔과 외로움에 몸살을 앓는다.

3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엄마는 몹시 외로워 하셨다. 심장수술을 하셔서 맘대로 농사일을 예전처럼 할 수도 없으니 외로움에 답답함까지 겹쳐서 힘든 날을 보내셨다. 어렵게 어렵게 계절이 바뀌어서 겨울이 왔다.

잎을 떨군 나무처럼 외로움을 더 타면 어쩌나 싶어 걱정을 했다. 그런데 자식들의 마음을 읽어준 듯이 경로당으로 요일마다 다른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강사들이 왔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아침을 드시고 아침드라마가 끝나면 서둘러 경로당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모인다. 집보다 따뜻한 방과 거실, 집집의 자식들이 보내온 주전부리가 늘 담겨져 있는 바구니가 어르신들을 반긴다. 기름 아낀다고 전기장판 하나에 몸을 의지했던 어르신들은 이곳이 아늑한 보금자리다. 거기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강사가 바뀌어 오니 경로당이 어르신들의 천국이다.

노래를 잘 부르고 좋아하는 엄마는 배운 노래를 항상 흥얼거리며 다니신다. 새로 배운 노래냐고 물어 보면 그렇다고 하시며 웃는다. 그리고 친정에 다니러 갈 때마다 늘어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손재주가 좋은 엄마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작품도 잘 만드신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몇 년 전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마을 경로당에 요리강습을 간적이 있었다. 어느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마을은 3개월 동안 매 요일마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난 주로 어르신들의 간식을 만들었다. 남, 여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셔서 좀 놀라웠다.

해주는 대로 앉아서 드시는 게 아니고 스스로 참여하며 기뻐하셨다. 원하는 것을 해드리겠다고 했더니 많은 분들이 피자를 원했다. 느끼한 것을 싫어할 줄 알고 메뉴에도 넣지 않았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음 주에는 피자를 만들테니 꼭 나오시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재료를 준비해서 찾아간 날 경로당 문을 열며 깜짝 놀랐다. 마을 어르신들이 이미 상을 다 펴놓고 마주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반갑게 맞아주며 재료들을 알아서 척척 다듬고 씻는 손길에 즐거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각 테이블마다 재료를 나눠주고 설명을 하는데 어떤 학생이 저리도 진지하게 들을까 싶을 정도로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기를 볶고 채소를 썰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모양과 맛으로 등수를 정한다고 하니 얼마나 열심히들 하시는지 말한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결과는 맛도 모양도 어느 피자집 못지않았다. 우열을 가리기 정말 힘들었다. 봉사활동 온 학생들 보고 등수를 헤아려 달라고 하니 맛과 모양에 놀라 어렵다고 했다. 1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 팀을 이룬 모둠에게 돌아갔다. 상금도 상품도 없었지만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엄마도 내가 보았던 어르신들처럼 그렇게 즐거워하시며 하루를 보냈을 거라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팔십이 넘은 엄마를 혼자 두어 죄송했던 마음이 조금은 줄어든다.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노인이 행복한나라, 즉 내 부모가 행복한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우리 자식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수확의 기쁨을 누리며 우리의 부모님들은 경로당에 오순도순 모일 것이다. 마주앉아 자식들의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노래도 부르고 작품도 만들며 즐겁게 그 해 겨울을 또 보낼 것이다.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담을 넘어 세상에 퍼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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