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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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7.04.13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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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지난 주 목요일 아침, TV를 켜 놓은 채 안방과 거실을 오가며 청소를 하다가 귀가 솔깃한 소리에 이끌려 소파에 앉아서 강연을 듣게 되었다. 배우 김태희와 비의 혼례 미사에서 주례를 맡기도 한 황창연 신부의 '자기 껴안기'라는 주제의 강의였다.

그 주제에 이끌렸다기보다는 인생의 멘토에 대한 부분이 나를 소파에 주저 앉혔다. 그에게는 세 분의 멘토 신부로 충고를 해 주는 신부, 예술과 철학을 이야기 하는 신부, 아무 생각이 없는 신부로 여행가면 함께 하는 신부가 있다고 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과연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는지 고민에 빠졌다. 나는 약간의 결정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뭔가 결정할 일이 생겼을 경우에 지인 몇 명에게 물어서 다수결의 의견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 외에도 개인적인 고민이 있을 경우 편하게 얘기하고 의견을 구하는 멘토가 있다.

또한 시집을 내면서 내 시를 봐 주고 좋은 말로 위로하고 격려해 준 형님 같은 선배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겐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바르게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멘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생각해 보니 얼마 전 내 말투와 버릇에 대해 조심스럽게 충고를 하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내겐 충고를 해 주는 멘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쓴 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멘티인 내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흔히 '멘토와 멘티'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멘토(mentor}란 그리이스신화에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위해 떠나면서 자신이 없는 동안 아들 테리마커스를 보호해 주도록 부탁했던 지혜로운 노인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멘토란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상대로 지도자, 선생, 스승의 의미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멘티(mentee) 또는 프로티제(prot?g?)라고 한다. 멘토와 멘티라는 것은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뿌리내렸다고 한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누군가 '삶'이란 글자를 'ㅏ'모음을 길게 내려 쓰고 그 밑에 'ㅁ'을 쓰면서 '사람'이라고 쓴 글씨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이 합쳐져서 삶이 되는 것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 삶을 이루어 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삶을 바르게 이끌어 줄 좋은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좋은 가르침을 주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좋은 멘티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인생의 가장 큰 멘토는 자기 자신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분명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이기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더불어 함께 사는 공간에서 사람을 생각하고 그와 함께 살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치유의 해답 또한 사람에게서 얻는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의 멘토를 찾기 전에 먼저 좋은 멘티가 돼 보려고 한다. '내가 만약 햇빛과 물기를 받아들이려 한다면 또한 나는 천둥과 번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이제 나는 모진 바람도 기꺼이 맞을 준비가 되었다.

삶이라는 지혜의 나무에 물을 주고 햇빛을 주고 때론 바람에 맞설 힘도 키워 줄 수 있는 인생의 멘토를 갖는 다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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