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의 여행
버스로의 여행
행복의 뜨락
  • 박윤희
  • 승인 2017.05.22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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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희 수필가.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10㎞'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책의 첫 줄을 읽는 순간 나의 마음은 벌써 무진으로 향해 있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느낌에 이끌려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 속의 주인공 윤희중은 타락의 가치가 하락하고 허무와 절망을 상징하는 서울을 떠나 무진(고향)이라는 새로운 시작하기 전에 잠시 휴가인 셈이다.

그에게 무진은 특별하다. 그리움, 향수를 찾아간 고향이지만 그곳은 참담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는 내용이다.

서울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모처럼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밖에 이용하지 않아 뭔가 어색하다. 그러나 버스에 올라가 앉는 순간부터 나는 내의식의 방임상태로 되어 버렸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찾아왔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창밖으로 시선을 보는 순간 나 자신이 그 곳에 서 있었다. 버스란 나에게 단순한 대중교통의 의미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부여해 준 존재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버스를 타게 되면 나는 기도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종교적인 의식이라기보다는 참회의 기도랄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그동안 살면서 잘못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했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루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평균 13명이라는 보도가 나와도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버스를 타는 순간 그 사람이 나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딘가를 떠날 때 출발점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의 마음으로 정리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심정으로 기도를 하게 되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젊은 학생들과 같이 공부해야 되는 나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늘 버겁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각과 동시에 행동해야만 겨우 다른 사람의 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나는 늘 뒷북만 치는 격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아무리해도 젊은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다. 요즘 같이 모든 일이 힘에 겨울 때는 특히 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버스를 타는 순간 긴장의 끈을 놓게 되어 편안함 마저 들었다. 서울 나들이도 아니고 일 때문에 가는 버스 안이긴 하지만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의 마음을 음미하고 있다.

버스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는 혼자가 아닌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이동수단이라는 장소의 이동으로 오는 마음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그동안 놓치고 지나간 일들과 반성들이 물밀 듯 밀려온다. 그래서 나에게는 버스라는 공간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일 년에 한 두 번 나는 여행을 가기를 꿈꾼다. 여행을 가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쁜 일상에서의 일탈을 맛보고 싶었다. 새로운 누군가 만남을 꿈꾸며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방황의 시간으로 며칠 간 찾아 헤매지만 결국 그 속에서 나를 찾게 되고 나를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그 곳이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중요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는 공간 속의 내 모습에서 또 다른 나를 찾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낯선 도시를 헤매며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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