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 꽃 그녀
목단 꽃 그녀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7.10.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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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진 수필가.

그녀를 본 것은 장례식장에서였다. 여고를 졸업하고 처음이었으니 20년이 지난 후였다.친구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자리여서 황망함에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헤어졌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하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그녀를 한참을 알아보지 못했다. 뼈만 앙상한 몰골에 이는 다 뒤틀려 도저히 그녀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우리 사이에서 80년대 최고의 미녀 소피마르소를 줄여 '소피'라고 불렸다.

그런 그녀의 변한 모습은 어이가 없을 정도여서 같이 갔던 친구와 돌아오는 길에 온갖 추측을 해 봤지만 우리의 머리로는 추측이 불가 했다.그녀는 한의사인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오빠는 S대를 다니는 수재였다. 외모 또한 '소피'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니 그녀를 부러워하며 시샘을 할 만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녀를 시샘하지 않았다.

그녀는 따뜻한 심성을 가지고 있어 언니처럼 포근했고, 정의로웠고, 겸손했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는 그녀였다. 그녀와는 여고시절 2년을 한 반이 되어 공부했다.80년대에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해 였고 그래서 어지럽고 흉흉했지만 우리교실 교탁 위에는 그녀가 꽂아놓은 목단 꽃이 늦봄까지 뽐내고 있었다.

자취를 하는 나는 늘 감기에 시달렸다. 우리 학교에 생물선생님 한분이 계셨는데 수업시간에 기침을 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잠을 자는 것은 용서 했지만 기침소리를 내는 친구들은 복도로 쫓겨났고, 기침감기에 걸리면 수업을 빠지고 양호실로 가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복도 끝에서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살며시 내 손에 한약을 쥐어주고 돌아섰다. 아마 그 전날 기침 때문에 생물선생님한테 눈 흘김을 당하는 공포 분위기에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것을 그녀가 안쓰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장례식장에서 그녀를 만났고 또한 10년이 흐른 어제 그녀의 소식을 다시 들었다.완벽하게 살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삶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안했던 모양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평범한 남편과 결혼했다고 한다.

두 아이를 낳고 잘 살았는데 남편이 도박을 해서 직장도 그만두고 집도 팔아 빚을 갚고 나니 갈 곳이 없어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해골처럼 살이 빠지고 잇몸이 들떠 이가 뒤틀리는 지경까지 갔단다. 그리고 사정이 더 안 좋아져 고향을 다시 떠났다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어제 그 소식을 듣고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그 기도를 그녀를 위해 오늘부터 하려 한다. 또다시 10년이 흐른 어느 날 그녀의 소식을 듣고 싶다. 세월이 할퀸 자국이 다 아물어 여고시절 내가 봤던 아름다운 그 얼굴로 목단 꽃 같은 그 우아함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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