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
딴따라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8.02.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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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숙 수필가.

붕붕 소리가 온 집안을 울린다. 남편이 색소폰을 부는 소리다. 집으로 온 후로는 매일 연습을 한다. 독학으로 배우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시간만 나면 색소폰을 분다.남편이 색소폰을 불게 된 이유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울산의 한 요양원에서 호스피스 봉사를 할 때 성탄절이 다가왔다. 요양원 원장은 어르신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지만 자금이 없어 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봉사 온 사람 중에 밴드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부탁했더니 자기는 한번 나가면 돈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곳은 사회봉사 명령으로 받은 사람들이 봉사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사정을 남편에게 이야기 했더니 주변 사람에게 말했나보다. 마침 동종 업에 종사하는 선장이 색소폰을 잘 분다며 공연을 해준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원장에게 이야기 했더니 매우 기뻐했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날, 못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은 약속을 하잖게 여긴 그 분에게 실망을 했다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그때 민요를 배우던 시기라 잘은 못하지만 장구 가지고 가서 한 시간 정도 어르신들과 함께 하면 된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 때의 충격이 발화점이 되어 알토 색소폰을 구입하더니 혼자 책을 보고 배우기 시작했다.

작년, 남편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는 사촌들과 함께 하는 미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함께 갈 수 있는 형편은 안 되고 미안하기도 해서 남편에게 테너 색소폰을 선물했다. 얼핏 지나가는 말로 테너 색소폰을 갖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테너 색소폰을 받은 남편은 그야말로 감격 그 자체였다.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기백 만 원씩이나 하는 것을 사 온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했다. 신이 난 남편은 더욱 더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이곳 주민자치 프로그램에 색소폰 교육이 있다. 남편이 혼자는 가지 않으려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일을 그만둔 남편은 무엇이든지 나와 같이 하려고 한다.

혼자 있으면 무기력해질까봐 무엇이든 같이 배우기로 했다. 테너색소폰은 남편이 불고 나는 알토색소폰으로 배우기로 했다. 콩나물 대가리도 잘 모르는 내가 배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부딪혀보기로 했다.

과연 소리가 나기나 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제법 큰 소리를 냈다. 소리가 나니까 자신감을 얻었다. 나이 들어 뭔가 배우려면 몸이 따라주지 않는 단점이 있다. 손가락이 따로 놀기도 하고 음표와 계이름도 눈앞에 어른거려 돋보기 없이는 한곡도 불 수 없다.

절대 못할 것 같더니만 노래 몇 곡은 어설프지만 불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시작이지만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던가. 배움에 목말라하던 내가 원하는 것을 골라서 배울 수 있음에 행복하다.
학교 교육뿐 아니라 평생교육으로 눈을 돌린 교육정책에도 감사하다. 나이 들면서 자신을 가꾸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행복에 빠져본다.

지인의 권유로 노래 봉사한지도 어느덧 2년이 되었다. 남편도 색소폰을 들고 봉사에 합류했다. 나도 일 년 정도 지나면 노래뿐 아니라 연주하리란 기대를 해 본다.이러다 부부 딴따라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러면 어떠랴.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라도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다면 딴따라도 좋을 것 같다. 멋진 딴따라가 되어 외로운 이들에게 정과 행복을 나누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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