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막이
바람막이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8.03.14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기연 수필가.

밤늦게 들어 온 남편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해병대 인터넷에서 둘째아들 동영상을 찾아 달라고 채근한다.영상편지를 찾아서 아들 모습을 반복으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거실로 나왔다.
컴퓨터가 서툰 남편은 몇 번이나 나를 불러서 반복하여 30초 정도의 짧은 인사말을 전하는 아들을 보았다. 흔들리는 동공 속에 눈물이 고인다.

지난 2월 19일, 둘째 아들이 해병대에 입대했다. 아침 일찍 가족 모두 포항으로 갔다. 입대 장소에는 군에 가는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강의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고, 아들은 아래층에서 친구들과 행사에 참석했다.

입대 안내에 대한 행사는 금방 끝났고 짧은 순간에 연병장으로 모였다. 사람들에 휩쓸려 연병장으로 나오면서 나는 당황했다. 머리모양이 똑같은 청년들속에서 아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울먹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앞에 큰아들이 길을 터주며 비집고 갈 수 있게 해 줬다.

부대로 이동하는 둘째 아들의 모습을 겨우 찾아 이름을 크게 부르고 까치발을 들어 손짓했다.
다행히 눈빛이 마주쳤다. 이별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 서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그 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해서, 쉬고 있는데 문자음이 울렸다. 입대하기 전날 밤에 아들이 보낸 예약 문자였다. 장문의 편지를 읽으면서 소리 내어 울었다. 중학교 시절 공부는 뒷전이고, 밖으로 다니기를 좋아해서 나와 관계가 최악이었다.

학교에서 오는 전화번호만 봐도 가슴이 내려 앉았다. 내 기대와는 점점 멀어지는 아들에게 상처가 되는 쓴 소리만 했다. 그 때 그래도 아들을 따뜻하게 품어 준 사람이 남편이었다. 남편덕분에 위기를 잘 넘기고 고등학교는 평범하게 졸업했다.

내 욕심 때문에 관계가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욕심을 버리고 나니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아들의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사랑이 깊어졌다. 어릴 적 함께 한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과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마음이 느껴졌다.

요즘은 예전보다는 군대와의 의사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매일  인터넷 편지를 쓸 수도 있고, 2주차부터는 단체 사진과 영상편지 등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품 안의 자식처럼 언제까지나 부모의 그늘에서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할 줄 알았다. 이제 고된 훈련을 견디고 나면 대한민국의 아들로 거듭나 모두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길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