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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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8.06.0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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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숙 수필가.

남편이 급하게 부른다. 가정의 달이라 연속되는 공연으로 피곤한 터라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걸까. 걱정이 되어 벌떡 일어났다. 시골 일에 문외한인 남편은 조그만 일에도 날 불러댄다.

지난 가을 수확한 무를 저장해 두었는데 썩고 있다는 것이다. 빨리 손을 쓰라고 날 부른 것이다. 먹는다고 했는데 양이 많아서인지 먹어도 많이 남아 썩고 있었나보다. 상한 것은 오려내고 무말랭이를 만들려고 썰어서 말리고 나머진 생채 나물을 만들었다.

무를 정리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아끼다가 똥 됐다고 아까워한다. 사실 나는 무가 그렇게 많이 남았는지 몰랐다. 이 년 동안 무씨를 뿌려도 수확이 없더니 작년엔 예상외로 많은 수확을 했다. 많아도 걱정 모자라도 걱정. 산다는 것은 걱정 속에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썩어서 버리게 된 무를 보고 있자니 어릴 때의 기억이 새롭다. 우리 어릴 땐 왜 그렇게 살기 어려웠는지. 군것질 한다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번 정도였다. 늦가을 하교 길, 먼 거리를 걸어 집에 오다보면 시장기가 돌고 힘이 없어진다.

그럴 땐 김장 때 쓰려고 심어놓은 무 밭이 눈에 띈다. 싱싱한 무를 쑥 뽑아서 잎은 떼어 버리고 무 껍질을 벗겨서 매운 맛이 입안을 얼얼하게 해도 맛나게 먹으며 집으로 갔다.

나는 참 별났던 것 같다. 여름 어느 날 하교 길에 배가 출출했다. 여름이라 밭에서 먹을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학교에서 머지않은 곳에 저수지가 있다. 교복치마를 잔뜩 올리고 저수지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마름이 있기 때문이다.

겉은 검은색에 겉은 뾰족하고 가시 같은 것으로 무장한 것과는 달리 하얀 속살을 품고 있다. 뱀도 많았을 터인데 그때는 겁도 없이 저수지에 들어가 마름을 잔뜩 뽑아서 먹었다. 지금이라면 창피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깊은 물속에 들어갈 엄두는 내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것은 뭐든 먹었던 것 같다. 감나무에 달린 땡감도 따먹고 고구마도 캐 먹었다. 어른들은 우리들이 소행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다들 힘들고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라 오죽하면 그랬으랴 생각하고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 한 것이다.

옥수수를 따다가 삶아 먹질 않나 참외고 수박이고 서리를 해 먹고 겨울엔 이웃집 부엌에 가서 밥을 가져다 먹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인정도 있고 어려운 이웃을 헤아리는 마음이 커서였을 것이다, 지금 같으면 경찰서에 신고를 해서 보상하라고 난리라도 쳤을 것이다.

도시에 사는 지인에게 주려면 가져다주거나 택배로 보내야하는 번거로움에 가까운 지인하고만 나누었는데 남아서 썩어가는 무를 보면서 번거롭다는 생각으로 점점 인색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옛날 우리 집은 길가집이라 오며가며 들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쳐서 쉬어가기도하고 시장해서 들어오기도 했다. 허기져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이 오면 당신이 먹을 밥을 선뜻 내주었던 엄마가 생각난다.

썩은 무를 보면서 나눔에 인색하지 않았을까 되돌아본다. 나도 지금 길가 집에 산다. 어떤 사람은 누가 사는지 궁금하다며 초인종을 누른다. 들어오라고 해서 차 한 잔을 나눈다. 엄마를 닮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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