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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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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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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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진 수필가.
강희진 수필가.

어릴 적 엄마한테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책만 읽는다는 것이었다. 그 책이라는 말에는 교과서를 제외한 각종 도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대물림이나 하듯 그 말을 자주 했었다.

우리 아이들 역시 공부보다는 책을 더 좋아해서 성적 때문에 노심초사했지만 별다른 말썽이 아니고 책을 읽는 거라서 한편으로는 걱정을 덜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주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도서관이라고 해봤자 복도 끝 교실 책꽂이에 여러 가지 책을 비치해 놓은 정도였다. 틈 만 나면 거기 파묻혀서 시간을 보냈다. 위인전과 동화책도 재미있었지만 '어깨동무'라는 잡지를 특히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의 도서관은 규모가 좀 컸다. 한수산의 '바다로 간 목마'가 한창 인기였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순서를 정해서 보기로 했는데 다음 차례에 빌어갈 친구를 위해 밤을 세워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하루 늦어지면 다음 친구도 하루가 늦어진다. 가능하면 하룻밤 사이에 읽어야 된다는 우리들만의 묵계가 성립되었다. 어떤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읽다가 들키기도 했다. 선생님이 압수해서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빼앗긴 친구는 눈총을 받았다.

눈총도 눈총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읽고 싶은 조바심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절대 읽지 말자는 강력조치를 내놓기도 했다.특별히 김민숙 작가의 '내 이름은 마야'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잊지 못할 대목은 주인공 마야가 낙엽을 태우는 장면이다.

그리고 '낙엽 타는 냄새가 좋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불현 듯 맡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그 책을 읽은 동무들끼리 단풍이 물드는 학교 뒤편에서 플라타너스 잎을 태우다가 그만 선생님께 들켜 버렸다.

선생님은 큰불이 날 수 있는데 왜 그랬느냐고 물으셨다. 겁은 났지만 낙엽 타는 냄새를 맡고 싶었노라고 했더니 허허 웃으셨다. 신작로 건너편이 바로 뒷동산이다. 그러니 위험한 장난이기는 했어도 낙엽을 태우면서 그 냄새를 맡고 싶어 했던 제자의 마음에 노여움을 푸신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졸업 할 때까지 예뻐해 주시던 그 선생님, 소식을 나는 아직 모르고 있다. 오랜만에 책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요즘 마음이 뒤숭숭해서 현실도피차원에서 추리소설을 주문하고 읽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주로 젊은 작가들의 책을 읽고 있는데 다양한 이슈를 놀란만한 필체로 엮어가고 있는 그들이 멋지다. 질릴 때까지 그들의 상상력,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 사회비판에서부터 과학의 세계까지 아우르는 이 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계속 읽어 볼 참이다.

요즘은 유튜브 채널에서도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을 물론, 책 내용 전체를 읽어주는 컨텐츠도 많다. 구태어 읽지 않아도 된다지만 도서관 매력에 빠져 있었던 나는 생각이 약간 다르다.

내가 직접 읽는 동안 얻어지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알아가고 또한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도 커다란 기쁨이다. 책이라고 하면 모름지기 종이에 인쇄된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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