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시간 뻗대기
인생은 시간 뻗대기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3.07.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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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웅 수필가.
서민웅 수필가.

벌초 철이다. 지난해 벌초를 마치고 귀경하는 버스 안이었다. 주말에 반복되는 일이지만, 벌초 철에는 고속도로에 차가 더 밀린다. 삼성에서 탄 시외버스는 고속도로에 꽉 찬 차량으로 서행했다. 평일에는 동서울터미널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도로가 막혀 중부 터널을 지날 때 벌써 1시간 반이 넘었다. 그때 뒤에 앉았던 남자 승객이 앞으로 가서 운전사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소변을 참을 수 없으니 정차해 달라는 부탁하는 것이라고 직감했다.

원래대로라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할 시간이 지났고, 앞으로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그 사람의 행동도 이해가 갔다. 잠시 후 노견 쪽에 졸음 쉼터가 나타났다. 그 승객은 그 지점에 쉼터가 있는 걸 알고 미리 운전기사에게 부탁한 것 같았다.

다른 차들도 사정이 비슷해서 쉼터에는 승용차들이 꽉 들어차 버스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중주차식으로 버스가 정차했다. 버스가 정차하자 그 사람 외에도 여러 사람이 급히 내려갔다. 운전기사도 뒤따라 내려갔다.

내린 승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에 앞에서 젊은 여성의 불평 섞인 큰 목소리가 들렸다. "한 시간 거리인데 안 가고 뭐 한대요?" 운전기사도 내렸는데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몰랐다. 아무래도 승객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일 거다.

그러나 반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차했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운전사가 승차했다. 그 여성이 또 외쳤다. “한 시간 거리인데 그 시간에 대 줘야지, 왜 안 간대요." 이번에는 운전기사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운전기사는 아무 말이 없고, 앞에서 중년 남성의 짜증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차가 막히잖아요. 도로 사정대로 가는 거지." 중년 남자도 버스가 서행하는 것이 마땅찮지만, 도로 사정 때문에 느린데 무슨 불평이냐는 것이겠다.

여성이 다시 말했다. “그래도 시간 안에 대 줘야지. 인생은 시간 뻗대긴데." 고속도로가 막히는데, 자기가 삭여야지 어떻게 시간 안에 대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여자의 말은 억지였다. 그제야 운전기사가 한마디 했다.

“나한테 그러지 말고, 전화해요."아마 버스회사 고객센터나 불평 신고수리소 같은 곳에 전화하라는 뜻인 것 같다. 여성은 아무 말이 없었다. 벌초 때라 길에 차량이 밀리는 데, 왜 제시간에 버스를 대 주지 않느냐고 항의할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다.

그 여성의 입장에선 휴게소가 아닌 쉼터에서 정차하니 더 늦어진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도착시간이 많이 늦어져 화장실이 급한데 또 어쩌겠는가. 그런데 아가씨의 '인생은 시간 뻗대기'라는 말이 귀에 설고 계속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뻗대다'는 순순히 따르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틴다는 뜻 같은데 인생이 '시간 뻗대기'란 말을 알 듯하면서도 어떤 뜻으로 이해해야 할지 헷갈린다. 혹시 요즘 젊은 이 사이에 인생은 시간 뻗대기란 말이 새롭게 유행하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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